삼시세끼 해결하기 - 1 by swon


최근의 근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삼시세끼" 챙겨먹기다.
진심으로, 아침에 눈 뜨면 오늘 아침을 뭘로 해먹나 고민하고, 아침 먹으면서는 오늘 점심은 뭘 어찌 먹나, 점심 먹으면서는 저녁은 뭘 먹지? 가다가 시장가서 뭘 사가야 하지?를 고민하며 살고 있다. 
도착한 첫주는 빵과 토마토로 살았고, 두번째주는 후라이팬, 칼 등 기본적인 살림도구를 장만하고 집근처 슈퍼에서 발견한 은혜로운 진라면으로 한 주를 살았다. 즉, 라면+밥+계란후라이로 매 끼를 해결했다는 얘기. 1년 먹을 라면을 한 주동안 다 먹은 기분이다. 

사실 낯선 곳에 가면 그 동네 주요 음식들 하나씩 먹어보는 재미가 쏠쏠한지라 나름 기대를 한 편이었다. 그런데 허허벌판 아무것도 없던 곳에 단기간에 무조건 밀어 붙인 도시라 그런지, 괜찮은 식당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며 금액도 만만치 않다. 도착한지 며칠만에 길거리에 널려있는 케밥 간판을 보고 대충 이 동네 음식문화가 어떤 분위기일지 감을 잡긴 했지만 좀 많이 심하다. 그나마 좀 괜찮아 보이는 식당의 주요 메뉴는 죄다 고기고기 아니면 기름둥둥+범벅.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알마티는 또 다르다는데, 꼭 가봐야겠음)

<라그만> 위구르 쪽 면 요리란다. 
가장 흔하게 먹을수 있는 음식 중 하나임. 
그나마 기름기 없는걸로 골랐음 ㅠㅠ


그 유명한 <샤슬릭>-숯불에 굽는 꼬치구이다. 
양고기/소고기/닭고기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식초에 절인 양파와 먹으면 신세계를 만날수 있다. 
하지만 삼시세끼를 이렇게 먹을수는 없는 노릇....

암튼간, 시장에서 100텡게(약 500원)면 신선한 토마토/오이를 봉지 터지게 살수 있고, 튼실한 닭 반마리가 300텡게(1,500원)인데, 식당에선 왠만한 음식이 700텡게(약 3,500원)가 넘는다. 물론 한국보다는 절대적으로 싸겠으나, 현지에 왔다면 이곳 물가에 적응해서 살아야 하는 법. 게다가 그 금액을 주기엔 그 수준이 너무 아까운 수준이다. 모든 조리 방법이 하나인 듯. 기름에 볶는다 또는 기름을 넣고 끓인다. 끗. 보기만 해도 대장암 유발하는 음식들이다.

아니, 도대체 이 동네 사람들은 어찌 먹고 사느냐 물었더니 외식문화가 많이 발달하지 않았단다. 집에서 다 해먹는다고. 맛집 수소문 하는 나를 보며 현지 직원들은 요리 할 생각 안하고 맛있는 밥집 찾는 나를 약간 의아하게 바라봤었다. '당신 나이가 몇인데'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는 것 같고;;; '왜 요리를 못하는 거야?' 라고 진지하게 묻는다. 
그러게. 나는 왜 뭔가를 만들어 먹을 생각을 한번도 안했을까. 

요리라고는 라면끓이기, 스파게트 등 지극히 일차원적인 것들만 해본 나로서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래도 살아야 하겠기에 고민 끝에 닭죽을 만들어보자 마음을 먹었다. 
그때만 해도 서울에서 EMS택배 도착 전이라 양념이라곤 소금, 후추가 전부였기에 최대한 양념과 재료가 간단한 음식이어야 했다. 게다가 한국 사람은 밥심 아닌가. 무조건 밥이 들어가야 하고 뜨신 국물이 있어야 했기에 선택한 메뉴가 닭죽이었다. 
쌀 불리고, 열심히 마늘 까고, 눈물 콧물 흘리며 양파 썰고, 닭 반마리 껍질 벗기고 토막내고…. 참고로 여긴 한국처럼 친절하게 부위별로 깔끔하게 손질된 고기 따윈 없다.(물론 외쿡인 많이 가는 비싼 마트엔 아주 비싼 값의 깔끔한 닭들이 있긴 하다) 기본적인(!) 정리만 된 닭을 사서 내가 알아서 토막내고 껍질 벗겨야 한다. 고기 손질 하는 법은 상상도 못했거늘, 배가 고프고 먹고 살아야 하니 어쩔수 없더라.

이렇게 재료 손질하는데만 한시간. 물 올리고 고기가 익은건지, 쌀이 다 퍼지긴 했는지 감이 없어 수십번 뚜껑 열고 뒤적거리고, 간도 못 맞춰서 소금을 찔끔찔끔 수십번 투하하고….
겨우 닭 죽 한그릇 앞에 앉기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초보들이 음식하면 그렇듯이 주방은 폭탄 맞은듯 너저분하고. 서양애들이 몸과 마음이 아플때 먹는게 닭고기 스프라고 했던가. 나 역시 내 영혼을 담은 닭죽을 먹으며 새삼스레 소비성 음식문화에 젖어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손 뻗으면 지천에 식당이 널렸고, 집 밥통에는 늘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삶이 사실 당연하지 않은것데 말이다. 그러니 맛 없다고 쉽게 버리고, 관리 잘 안해서 버리고, 마트에 진열된, 얘가 닭인지 햄인지 구분조차 안갈 정도로 매끈한 포장에 담긴 식재료들이 사실은 얼마나 귀한 것들인지 이 나이 되서야 절감했다. 

내 영혼을 달래준 닭고기 수프, 아니 닭죽
만들다 배고파 쓰러질뻔 하여, 일단 한 입 먹고 인증샷 찍음;;

드디어 삼주차에 오매불망 기다리던 전기밥솥과 멸치가루, 고춧가루 등 기본 국물용 재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미역과 김이 도착했다. 그리하여 도전한 두번째 요리는 소고기 미역국!
한국식 대파와 마늘, 무, 배추 같은, 여기선 쉽게 구하지 못하는 채소들을 살수 있는 대형 시장이 있단다. 그리고 큰 정육점도 있다고 하기에 시장 탐험을 나섰다.
그런데 국거리용 고기, 일명 사태 부위를 내가 무슨 수로 설명 하나. 솔직히 사태 부위가 도대체 어디인지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영어로 검색해보니 shank(정강이)라는데, 이걸 러시아어로 그대로 번역했을때 정육점 아줌마가 과연 알아들을까? 당장 우리만 해도 정육점 가서 '소 정강이' 주세요 라고 안하잖아. 사태라고 하지ㅠㅠ

미역국을 먹게 해준 고마운 그림

궁하면 다 통하는 법. 고민 끝에 소 그림을 미리 폰에 저장해뒀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구글번역기의 shank의 러시아 발음을 들려줬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줌마 표정에서 '얘가 뭔 소리를 하는겨'라는게 역력했다. 하여, 비장의 무기-소 그림을 보여주고 '여기요~' 했더니 아줌마 빵 터짐. 그리고 생고기 한덩어리를 척 하니 포장해준다. (참고로, 이 동네는 냉동고기 따윈 없는 모양. 아주 실한 정강이 뼈까지 붙어있는 생고기를 받아왔다)
계획에 없던 정강이뼈사골을 내고 국간장이 없어 대충 스시 양념간장 사다가 미역국 완성!
지난번 닭죽에 이어 쇠고기 미역국까지 성공하다니. 나 설마 요리천재였던가… 
제일 쉬운게 미역국이라는 톨모씨의 비웃음이 있었으나, 무려 두 끼를 해결해준 고마운 미역국이었다.




덧글

  • 2015/09/25 16:41 # 삭제 답글

    영국 미국에서 만만하게 해 먹은게
    미역국 콩나몰국 감자국 오뎅국 곰국 정도였나봄.
    나도 주방과는 격조한 사이인지라...-,.-;;
    아니면 구워먹고 볶아먹는 정도.
    다만 영국엔 한인슈퍼도 있구 고기들이 엥간히 정리가 되어서...
    삼시세끼 이서진이 곰국끓이는 게 신기하지는 않앗음
    넣고 오래 끓이다 보니 자가 발전했을 거란 생각.
  • swon 2015/09/25 16:49 #

    여긴 아무래도 한국 식자재가 풍부한 편은 아니라 내가 더 쩔쩔매는 것일수도. 대신 라면은 정말 다양한 종류로 들어와있더라ㅋ 그리고 그 유명한 도시락의 위엄을 확인했음ㅋㅋㅋ
    확실히 요리의 즐거움이 있긴 한듯. 힘들게 만들어서 맛있게 먹는 그 단순한 일이 꽤 큰 기쁨을 주더라고.
  • okna pcv piła stołow 2022/09/18 17:18 # 삭제 답글

    글이 더 자주 올라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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