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중앙아시아 한복판에 자리한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서 10개월간 일하게 되었다.
나름 여행과 출장으로 전세계를 이곳 저곳 다녔지만, 내 인생에 CIS 지역에서 해외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릴적 로망으로만 간직하고 있던 파미르 고원, 톈산산맥, 비단길!
그 뜻밖의 인연으로 시작된 아스타나 이야기를 조금씩 기록해둘까 한다. 본격적인 아스타나 이야기에 앞서, 카자흐스탄이라는 나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채 짐 싸서 도착한 나 같은 무식한 이가 더는 없기를 바라며, 아주 기초적인 국가 정보를 조금 말랑말랑하게 적어본다.
(대부분의 자료는 외교부에서 작성한 카자흐스탄 국가현황 자료를 참고로 작성했으며, 지역적으로는 아스타나를 중심으로 바라본 소감이다. 아스타나 주민이 된지 열흘된 이방인의 시선이니, 약간의 통계상/수치상 오류가 있을수도 있다는 점 미리 밝힌다.)
시작에 앞서, 일단 지도부터 보고 갑시다. 대체 이 나라, 어디 있는거야?

전 세계 아홉번째로 큰 나라, 진짜 대륙의 한복판
파견지가 결정된 후, 구글맵에서 찍어본 후 깜짝 놀랐다. 이 나라, 엄청 크다. 정말로 엄~청 크다. 면적으로는 전 세계 9위의 광활한 면적을 지닌 나라다. 게다가 파견지인 수도 아스타나는 유라시아 대륙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수도를 옮기면서 세계에서 가장 추운 수도(오타와, 모스크바 등이 밀려났다고)의 순위가 바뀌었다고 할 만큼, 지구본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고 덕분에 확실한 대륙성 기후를 지니고 있다. 여름엔 화끈하게 덥고(건조하고) 겨울엔 확실하게 춥다(건조하다!!!). 현지 직원들 말로는 11월부터 시작된 겨울이 다음해 3월 말까지 계속되고, 겨울철 기온이 영하 40도까지도 내려간단다.
스탄, 스탄, 스탄 그리고 비단길
이곳은 말 그대로 '~스탄' 국가들이 한데 모인 곳이다. '스탄(Stan)'은 이곳 말로 '~의 땅(Land)'라는 의미란다. 즉, 카자흐스탄은 '카자흐 족의 땅,' 우즈베키스탄은 '우즈벡 족의 땅'이라는 뜻이 되겠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 지역의 스탄들-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은 과거 20세기에는 구 소련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더 먼 역사를 더듬어 가자면 위대한 징키즈칸의 후손들이 세운 칸국(汗國/킵차크, 보고타이 칸국 등)이 위치했던 바로 그 곳이다.
무엇보다도 이 곳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는 바로 비단길(Silk Road)다. 톈산산맥을 따라 비단북로/남로로 나뉘어 동서양을 이어주었다. 현재 알마티가 위치한 카자흐스탄의 남부 지역이 바로 이 비단길의 주요 무대가 되겠으며, 현재 수도인 아스타나는 초원길의 한 부분이 되겠다.
오일머니의 숨겨진 강자
아라비아 반도의 유전 다음으로 최대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중앙아시아에 자리한 카스피해 유전이란다. 구 소련 해체 후 독립한 카자흐스탄의 엄청난 경제발전은 바로 이 카스피해 유전이 있기에 가능했다.
염수호인 카스피해가 국제적으로 바다로 인정되느냐, 호수로 인정되느냐에 따라 주변국의 이해관계도 엄청나게 바뀐다고 한다.
현 국제법상, 호수로 규정될 경우, 카스피해를 둘러싼 5개국(카자흐스탄, 러시아, 아제르바이젠, 투르크메니스탄, 이란)이 사이좋게 소유권을 1/5씩 나누어 가지게 된다. 카스피해가 바다로 지정되는 경우에는 사정이 많이 바뀐다. 카스피해에 인접한 해안선의 길이에 따라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연안 면적이 좁은 이란과 투르크메니스탄은 당연히 호수라고 주장하고 있고 나머지 3개국은 바다라고 주장하고 있단다. 당연히 쉽게 결론이 날 이야기가 아니고 여전히 분쟁중이란다. 카스피해를 가로질러 유럽까지 이어지는 석유 파이프 운영권도 이 나라의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인데, 이 얘길 하려면 너무 길어질테니 일단 여기까지.
석유 뿐이랴. 카자흐스탄은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에 나오는 원소의 9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자원 부국이기도 하다. 특히, 우라늄, 구리는 전세계 매장량 중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하니 여전히 원자력에 목메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꽤나 신경써야 하는 나라가 아닐수 없겠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자원 수출이 국가의 GDP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정부 주요 기관에는 Ministry of Energy가 별로로 운영되고 있다. 덕분에 카즈무나이가스(대한석유공사 정도 된다)가 이 나라 젊은이들이 꿈꾸는 신의 직장이라고.

국립카자흐스탄박물관 로비 모습.
모든 주요 건물이 크다. 매우 크다.
카자흐스탄의 세종시, 아스타나
1991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카자흐스탄은 남쪽에 있는 알마티를 떠나 한참 북쪽인 아크몰라 지역으로 수도를 이전하는 대사업을 벌인다. 극심한 반대 세력이 있었겠지. 안봐도 비디오다. (아스타나에 비해 비교적)온화한 기후와 텐산 산막과 같은 대자연이 있는 알마티라는 역사적인 도시를 굳이 버리고 도대체 왜 저 추운 대륙 한복판에 신수도를 이전해야 하는지 납득할 카자흐인은 별로 없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카스피해 유전을 기반으로 한 오일머니와, 강력한 권력으로 1992년 취임 이래 오늘까지 초대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대외적 명분을 내세워 1997년 수도이전을 강행했다.
하얀 무덤이라는 뜻이 아크몰라는 아무래도 새수도의 명칭에 맞지 않기에 새 이름을 붙이고자 했고, 여러 의견 끝에 카자흐 어로 '수도'라는 뜻의 아스타나가 신수도의 이름으로 결정되었다. 어감이 참 예쁘다 생각해서 무슨 뜻이냐고 물었는데 돌아오는 답이 '수도'에요 라서 좀 황당했다.ㅋㅋㅋ
스텝지역의 불모지였던 아스타나는 지금 고층건물이 즐비한 현대식 도시로 탈바꿈했다. 여전히 도시는 공사로 시끄럽고 초대형 크레인이 도심 곳곳에 서있다.
아스타나 중심을 가로지르는 이심강변의 대통령궁에서부터 도시의 랜드마크인 바이테렉(Baiterek), 대형 게르 모양의 한 샤트르(Khan Shatyr) 쇼핑몰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아스타나의 중심부에서 가만히 바라보자면, 카자흐스탄의 현재의 모습과 미래에 대한 의지가 너무나도 확실하게 드러나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이렇게 솔직하고 확고한 도시계획이 또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슬람-러시아-아시아 등의 이질적인 요소들이 묘하게 뒤섞인 스타일에서 카자흐스탄 나라 구성원들의 성격(!)이 한눈에 보인다. 게다가 그 어마어마한 규모라니. 전 세계 유명 건축가들을 모셔와 열심히 지은 대형 건축물들을 보자면, '우리, 이 정도야~'라고 뽐내고픈 대륙 특유의 과시욕이 아주 확실하게 드러난다.

바이테렉 앞 공원의 주말 저녁 모습
언뜻 보면 여의도 공원 같기도 하다

아스타나는 아직도 공사 중이다

이렇게 길쭉한 러시아 스타일 언니들과
나같이 생긴;; 아시아계가 이질감 없이 섞인다
밭 매는 김태희와 장동건의 나라
안타깝게도 그 유명한 밭 매는 김태희와 장동건 이야기는 이 나라가 아니란다.
나도 오자마자 한국에서 들었던 그 미남/미녀 소문에 대해 물어보니,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미녀는 우크라이나 출신이며, 굳이 스탄 지역을 따지자면 우즈베키스탄이라고.
카자흐스탄은 다민족 국가다. 전통적으로 유목생활을 했던 카자흐 족이 대부분이며,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우즈벡인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탈린 시절 강제이주당한 고려인을 포함해 약 130여민족이 모여 살고 있는데, 이 엄청난 숫자에 비해 신기하리만큼 인종/민족/종교갈등이 없단다.
덕분에 길거리를 걷다보면 전형적인 금발 푸른눈의 러시아계(슬라브족)과 나같이 생긴 아시아계 인종(카자흐족)이 그 어떤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섞여 살고 있는 모습을 볼수 있다. 가끔 내게 길을 물어보는 현지인들이 있을 정도랄까.
카자흐 어, 알타이어족
이 곳의 공용어는 러시아어와 카자흐 어다. 구 소련 통치의 세월때문에 여전히 다수의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는 카자흐어를 강조, 공식문서에서는 반드시 카자흐 어를 사용하게끔 하고 있지만, 수십년의 세월을 소련과 함께 살아온 노년층과, 러시아어를 조금 더 세련되게(!) 느끼는 젊은층 덕분에 카자흐 어가 더 널리 사용될것 같지는 않다.
최근에는 이곳 대통령이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영어까지 포함해 총 3개국어를 공용어로 지정, 교육과정까지 개편하고자 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카자흐어 조차 사용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영어 공용화는 대통령의 욕심이 아닐까 싶다.
같은 키릴문자를 사용하지만 카자흐 어는 어순이며 여러가지로 러시아어와는 완전히 다르단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인이 러시아어를 배우는 것보다, 카자흐 어를 배우는 것이 훨씬 쉬운데 그 이유가 바로 같은 알타이어족에 속해 있기 때문에 언어 구조가 매우 유사하다고.

아스타나의 랜드마크 바이테렉과
주말 결혼식 하객들의 모습
[예고] 카자흐스탄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 02
- 독립한지 25년, 그런데 아직도 초대대통령
- 유럽이냐, 아시아냐 그것이 문제로다
- 까레이스키 디스카운트가 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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